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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일상 이야기/베트남 생활 꿀팁

신짜오 베트남 : 박항서 감독 이야기

by 마스터하 201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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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 안녕하세요 마스터 하입니다. 오늘은 박항서 감독님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해요. 베트남에 살면서 진짜 방탄소년단보다 많이 들은 이야기가 뭐냐면 '박항서 아냐' 입니다. 워메~~ 진짜 호치민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수많은 인기를 누리고 계시다는걸 제(축알못)가 체감 했다는 것은 인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박항서 감독님에 대한 포스팅을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박항서 감독 이야기 


 

박항서 감독

1959년 1월 4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진주랑 가깝죠? 제 시골하고 가깝습니다~ ^.^)

키 166cm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

 

2017년부터 베트남 대표팀 갑독을 맡으셨습니다.

 

>> 일본 유학생 출인인 아버지, 명문 진주여고를 나오신 어머니는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하셨고 어릴적부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경신고에 진학하였고, 축구부원들이 공차는 모습을 보고 멋있어 고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체격이 작고 말라 고등학교 때 후보선수로 지냈고 운동선수 학사관리가 미흡했던 그 시절 관행을 따라 제때 졸업을 못하고 1년을 꿇었다고 한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해 엄청난 훈련 끝에 고3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골을 넣어 경신고에 우승컵을 안겼다고 한다. 한양대 2학년이었던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하였다.

1981년 실업팀인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실업선수로서 데뷔하였으며, 곧바로 육군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한 뒤 1984년 럭키금성황소 축구단에 창단 맴버로 입단하여 프로무대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198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선언을 하였는데, 축구를 늦게 시작했고 리그 태동기라 실업과 군복무를 거쳤기 때문에 다른 역대 국가대표 감독들에 비해 짧은 4년의 프로선수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20일대부터 머리가 빠졌기 때문에 대머리 링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20대의 박항서 선수의 모습이었다.

 

 

여담


박항서 감독이 진단한 베트남 선수단의 근복적인 약점은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 그래서 박항서 본인이 직접 패싱 게임에 참여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을 도입했는데 초창기엔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했을때와 아주 유사했다. 당시까지 국내 축구인들은 "우리 선수들은 체력과 정신력은 뛰어나지만 개인 기량과 기본기가 부족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히딩크 감동은 반대로"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경기체력과 피지컬이 부족하고 멘탈관리가 허술하다"는 진단을 내려 많은 이들을 의하하게 만들었다. 이때문에 집중적인 체력 훈련과 피지컬 강화에 몰두하는 히딩크를 향해 "축구 연습은 안하고 몸싸움만 시킨다"라는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던 박항서 코치는 이런 과정을 모두 지켜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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